-오랜만의 휴식-
`오랜만의 휴식' 이라고 , 제목을 써놓고 보니,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한동안 갖은 상념에 젖어들게 된다.
내 나이 청춘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걸까, 아님 이삼십대를 청년기라 하
니 아직은 청춘이라 할까 ! (결혼안한 친구가 보면 기가 막히겠다)
그러나, 신세대가 아님은 분명한것 같다. 요즘 아이들의 적극적이고 도발적
인것에는 따라가지 못하겠으므로....
친구들이 한창 멋을 내고 다닐 때쯤, 나는 이른 결혼 생활로 인해 아이를
업고 다녀야 했으니, 별로 청춘의 황금기를 즐기진 못한것 같다.
내 기억속의 황금기는 유년 시절 이었던것 같다.
충청도 시골 그것도 동네에서도 조금 떨어진 산밑 외딴 집이었던 내 고향
집에서의 추억은 언제나 나를 즐겁고 , 행복하게 한다.
봄이 되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산이 물들었는데,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
보면, 아침 이슬이 그대로 철쭉꽃위에 촉촉이 젖어 있곤 했다.
`신선함' 그 자체였다. 산에는 늘 먹거리가 풍성했다. 다래,머루,산딸기,
벚나무도 있었고, 취나물,홑잎나물,고사리,고비,버섯등...
친구들과 함께 칡뿌리를 캐러 산을 뒤지던 기억은 지금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한여름 밤이면 젖은풀을 가져다 화로에 얹고 모기불을 피웠는데,하얀 연
기가 하늘로 솟아 일직선을 긋기도 하고, 그주위로 개똥벌레들이 춤을 추
기도 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있으면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
이 쏟아질듯 하나가득 빛나고 있었다. 난 그때 학교에서 배운 별자리의
모양을 떠올리며,별자리를 찾곤 했는데, 언제나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는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나는 집 뒤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에 올라가 있는걸 좋아 했는데 , 앉아있
기 편한 단골자리에서 책 읽는것을 즐겨했다. 가을이되어 밤이 열릴때면
제일 먼저 일어나 밤새 떨어진 알밤을 누가 먼저 주을세라 잽싸게 줏기도
했다.
겨울이되면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을 대문밖 비탈진곳에 쌓아놓고 물을
부었는데 , 그것은 얼마후 훌륭한 얼음 미끄럼틀이 되곤 했다. 그러면 동
생과 나는 다투어 하얀 미끄럼틀을 탔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언니의 기억도 내 고향집에 머물러 있다
. 지금도 이마에 남아있는 흉터는, 언니가 친구와 자치기를 하다 자친것
이 내 이마에 맞아 생긴 것인데, 그때 언니는 아버지께 무척 꾸중을 들었
고, 난 속으로 쌤통이다 하며 아버지의 약을 바르시던 따뜻한 손길을 느
끼며 잠이 들었었다. 여덟살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이 항상 인자함으
로 기억 되는 것은, 그때 나를 걱정 하시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
이리라. 나는 나보다 열살이 많은 언니를 참 좋아했는데, 언닌 항상 단짝
친구하고만 다니려 했고, 난 어떻게든 언니를 쫓아 다니고 싶어 했다.
그럴 때면 언니는 숨바꼭질을 하자며 내가 술래가 되었을때 달아나곤 했
다. 그때 난 언니가 밉기만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참 어린 동생
을 혹으로 달고 다니고 싶지 않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지금 , 너무나 보고 싶은 내 언니..
그 언니는 언니 나이 스물 다섯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
지금 돌아 보면 그리 유복하진 못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불행했다고
느끼지 않는것은, 돌아보면 포근한 내고향과 항상 내 주위엔 나를 아끼
는 좋은 이웃들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금 나를 사랑하는 내 남편과 사랑스런 딸 정아가 있으므로...
그동안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별로 갖지 못한것 같다. 항상 바쁘게 살
아 왔으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고 싶다. 그동안 쓰고 싶었던
글도 마음껏 쓰고...
이번에 새로이 글 쓸 기회를 갖게 되어 정말 기쁘다.
9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