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베란다 유리문에는
딸아이의 편지가 붙어 있는데
[비둘기야 비둘기야 우리집에 오렴
내가 먹이를 줄께 이름 순이]
비둘기 이름이 순이다.
"그럼 엄마 이름하고 같은데 어쩌지?"
"음.. 그럼 다른 이름져야겠네"
이런 저런 이름을 궁리하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기색이길래
"그럼 곰이라고 할까??"
엉뚱한 제안을 했더니
"아이참 엄마는!!.. 그냥 순이라고 할래."
우리집 펜더 인형도 이름이 리리가 진짜 이름인데도
곰순이가 더 좋다고 그렇게 부른다.
정아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은 곰돌인데
알뜰시장에서 500원 주고산 OB모자를 쓴 다 헤진 낡은 인형이다.
잘때는 꼭 옆에 안고 자고 자다가 없으면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찾으러 다녀서 남편과 나를 놀래키기도 한다.
이번에 펜더 인형을 사주면서 곰돌이는 그만 버릴까 했더니
"엄마! 아들 버리는 사람이 어딨어!!"
하여간 이래서 난 곰돌이 할머니가 됐다.
여름 캠프도 곰돌이는 가져가면 안된다니까 안간다고 우긴다.
아차! 비둘기 얘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곰돌이 얘기만 하네요.
딸아이가 그런 편지를 써서 붙인데에는이유가 있다.
"정아야 우리 안양집에 살때 비둘기가 베란다에 날라와서 먹이준것
생각나니?"
"언제?"
"정아가 아기였을때지.."
" 아! 엄마, 생각나는것 같애. 그때 비둘기는 말을 못하니까
고맙다고 한바퀴 돌고 날아갔었지??"
" ??.. 응, 그랬지"
생각나는것 같지 않은데도 딸아이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즐거워 했다.
내 뱃속에 있었을때 발로 차고 그랬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엄마, 내가 그때 엄마를 막 불렀었던거야"
하고 기억이라도 하고 있는듯 말한다.
" 엄마 그런데 비둘기가 우리집이 이사해서 어딘줄 모르니까
못찾아 오나봐. 내가 편지를 써서 붙이면 그거 보고 오겠지?"
" 음.. 아마 그럴거야"
그래서 쓰게된 편지가 지금 베란다에 붙어 있다.
내가 이사오고 나서 전에 살던 집 베란다에 비둘기가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집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 지금 딸아이는 베란다에가서 노래를 부른다.
"비둘기야? ? 비둘기야 빨리 와라~~~"
이거 큰일났네요. 비둘기가 올리가 없는데 기다리고 있으니..
여러분께서 비둘기를 보시면 전해 주실래요?
순이라는 멋진(?) 이름까지 지어놓고 있는 제 딸을 위해서요.
1996.